Business Story #1. 존경받는 기업&CEO 유한양행, 故유일한 회장 (국가를 독립을 위해 기업을 설립하고, 빈손으로 떠난 기업가)
재벌, 상속, 갑질, 정계유착.. 우리 나라의 기업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좋은편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국가 독립을 위해 설립되어 아직까지 그 유지를 잇고 있는 기업이 있다.
바로 유.한.양.행. 그리고 창립자 故유일한 회장 이다.
존경받는 기업&CEO (1) 유한양행 , 故유일한 회장
(국가를 독립을 위해 기업을 설립하고, 빈손으로 떠난 기업가)
유한양행은 약품사업부문, 생활건강사업부문, 해외사업부문 등 크게 세 가지의 사업부문을 경영하며, 전문의약품과 함께 삐콤씨 등과 같은 일반의약품, 유한락스, 암앤해머 등의 생활의약품을 판매해 오고 있다.
국내 1위 제약회사 유한양행을 이야기할 때에는 설립자인 故유일한 회장을 빼 놓을 수 없다.
유한양행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약 기업 중 하나로, 존경받는 CEO와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주 언급되는 기업이다.
설립 이래 90년이 넘는 시간동안 유한양행의 창립자인 故유일한(1895∼1971) 회장의 삶과 철학이 현재까지도 계승되어오며,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고 있는 기업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재벌가 기업의 자신의 자손들에게 경영권을 계승하는 것과는 달리, 전문 경영인 체제를 통해 유일한 회장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
유일한 회장은 생전 “기업의 소유주는 사회이다. 단지 그 관리를 개인이 할 뿐이다”라고 강조하며 "기업의 이익은 사회에 환원해야한다" 는 정신으로 유한공고, 유한대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과 장학재단을 설립하는 등 국민들의 교육에 노력과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1936년, 개인 회사였던 유한양행을 주식회사로 바꾼 후 직원들과 종업원에게도 주식을 골고루 분배해주었는데, 이는 "회사의 주인은 직원이다"라는 평소 그의 생각을 실천한 일이었다.
"누구든 능력 있는 전문 경영인이 이 회사를 맡아 발전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회사의 전통이 되기를 바랍니다. "
유 박사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유한양행은 1969년부터 오너가 없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누구든 능력있는 전문 경영인이 회사를 맡아 발전시켜야 한다"는 유일한 회장의 바람대로. 아낌없이 봉사하고 나눠주고 떠난 것 처럼 현재까지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에 따라 내부승진으로 운영되며 회사를 위해 일한 후배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는 전통을 잇고 있는 기업이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 재임한 조권순 사장 이후 유일한 박사를 포함하여 16명의 대표이사 자리를 거쳐, 2015년부터 현재까지 이정희 사장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평사원 출신이다.
유한양행의 CEO 임기는 3년, 재선임 되면 6년까지 가능하며, CEO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직원들과 의논하고, 이사진과 합의를 통해 결론을 내린다. CEO들은 임기를 마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회사는 떠나는 것이 유한양행의 전통이라고 한다.
독립운동가, 유일한 선생 "건강한 국민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
유일한 회장은 미국 유학 후 1926년, 귀국하면서 민족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민족자본을 형성하기 위해 유한양행을 설립한다.
"건강한 국민만이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으로 제약회사를 설립했고, 유한양행은 설립 취지부터 개인의 이익보다는 국가를 위한 기업으로 출발하게 된다.
유일한 회장의 이러한 정신은 이러한 남다른 부친의 신념으로부터 물려 받았다. 부친 유기연은 장사에 남다른 소질이 있어 재력을 쌓은 상인이었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의 이전투구와 러일저쟁을 목격하며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끼며 선진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 아들을 유학보내기로 결심한다. 1905년 유일한 회장은 미국 유학생활을 시작했고, 그 해 을사조약으로 대한민국은 국권을 강탈 당하게 된다.
유일한 회장은 오전에는 학비를 벌고, 오후에는 한인소년병학교에서 학과공부와 군사훈련을 하며 독립운동가의 자질을 키워갔고, 1916년, 유일한 회장이 미시간 주립대학에 재학했을 때, 3.1운동 소식을 접하게 된다.
유 회장은 한인자유대회에서 대의원 자격으로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임병직 등과 함꼐 실무적인 일을 맡았고, 대회의 마지막 행사에서는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행진을 하기도 했다. 유일한 회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서 취업 후, 동창과 사업을 통해 벌게된 자본을 갖고 귀국하여 유한양행을 설립하게 된다.
"언제나 몸을 사리지 않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고 유일한 회장"
유일한 회장은 50대의 나이에 특수훈련을 받고, 미군 전략정보처와 협력해 일본을 상대로한 침투작전에도 직접 참여했다. 그리고 광복 후 대한상공회의소 초대회장을 맡아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해 힘썼다.
"종업원에게도 주식을, 주식 전액은 사회에, 딸의 땅은 유한동산으로, 아들에게는 자립해서 살아가라.."
1969년, 기업자신의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넘깁니다. 국내 최초 종업원 지주제 기업이 된다. 그리고 1971년, 76세로 세상을 떠나며 고 유일한 회장은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액을 사회에 남겼다.
딸에게 남긴 땅으로는 유한동산을 만들어 학생들이 마음껏 드나들 수 있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자신의 장남에게는 "대학까지 졸업시켰으니 앞으로는 자립해서 살아가라"며 재산을 물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부친으로부터 유일한 회장에게, 또 그를 부친으로 두었던 그의 자녀들에게도 유일한 박사의 이러한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 그의 딸 유재라 여사 역시 세상을 떠날 때 자신의 재산 200억원을 모두 사회에 기부한다.
고 유일한 회장의 유품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 몇가지와 양복 세벌, 구두 두 켤레, 낡은 가방, 모자, 지팡이가 전부였다고 한다.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
유일한 회장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해 설립된 ‘유한재단’은 장학사업·사회복지사업을 비롯해 전국 청소년 글짓기 대회, 유재라 봉사상 등을 진행하고 있다.유한재단이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인 장학 사업은 학업성적이 우수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고등·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자산가인 빌 게이츠, 워렌 버핏 등이 천문학적인 자산을 생전에 거의 대부분 사회에 환원할 것을 선언해 존경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故 유일한 회장이 이미 수십 년 전에 전 재산 사회 기부를 실천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러한 유일한 회장의 이러한 정신은 부친으로부터 그에게, 또 그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현재까지도 이어져 유한양행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한 교수는 유한양행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 자본주의에 이런 기업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우리는 해외의 좋은 기업 사례들만 바라보며 부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도 해외 어느 기업에도 뒤지지 않는 자랑스러운 기업가 정신이 스며있는 기업이 있다는 사실은 가슴 벅차게 자랑스럽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창업주 故유일한 박사의 이념이 계속 계승되는 유한양행으로 남기를 바란다.